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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먼트

 

축적된 시간 속에서 꿈꾸다

 

내 사진의 프레임은 시간의 저장고이다.

2000년도 바늘구멍 사진기를 만들면서 핀홀사진을 작업하게 되었다.

뭉툭한 연필로 그린 것 같은 느낌의 이미지의 투박함과 오로지 바늘구멍을 통해 장시간 촬영을 하면서 새롭게 보여진 형상들과 빛의 층계로 차곡히 쌓여가는 화석과 같은 이미지에 매료되었다.

 

심미적 브레이크를 걸다

 

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탈 공간적이니, 탈 시간적이니, 하는 무수한 숫자 데이터에 의해 조작되는 ‘디지털’ 의 가능성에, 컴퓨터 모니터 스크린의 초고속 정보의 신기루 속에 시선을 모으고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은 풍요롭기는커녕 삶에 찌들려 기계처럼 움직이는 노예가 되고 있다.

뭐든지 빠르게 초월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파괴적 속도의 시대에 심미적인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다.

 

시간의 원근을 표현 해 보면 어떨까?

 

2008년부터 시작된 ‘Dreaming Flowers’ 시리즈, 2011년 ‘Dreaming Flowers Ⅱ시리즈, 2013년 ‘Scent of time’ 시리즈, 2016년 ‘Fade out’시리즈로 이어진 내 작업의 오브제인 꽃에서 시간의 원근을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7일~14일간의 꽃이피고, 지고, 말라져 사그라지는 순간을 필름에 기록하여 곰삭힘에 의한 시김의 색채와 형상이 깊이 있고 풍부한 층위를 보여주는 시김의 미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꽃의 화려한 생명력보다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소멸되어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생명력과 자연의 순리를 느끼며 결국, 사라져가는 인생의 무상함과 아름답기도, 추하기도, 슬프기도, 쓸쓸하기도 한 시간의 심연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서지영

 

 

 

 

 

 

카오스의 물(The Water of Chaos) / 2008

어느 날 탁자에 놓여진 얼음조각이 담긴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의 물은 참 고마운 존재이다. 물의 양은 정해져 있고, 물의 쓰임새는 인류문명의 발달과 함께 다양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 부족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는데 슬슬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화성에는 정말 물이 있었던 걸까? 억겁의 시간을 지나면서 정말 물이 사라진 걸까? 물... 궁금했다.

 

우리 몸의 60~70%가 물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물은 시작도 끝도 없이 자연계에서나 생체 내에서 순환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 흐름은 쉬지 않는다. 이 순간에도 바다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바다로 물은 돌고 있다.

 

물은 정화와 순수의 상징이며, 우주적 현현의 기초이며, 무정형으로 원초적 물질을 상징한다. 또한 여성성의 상징으로 물이 주는 의미는 그 존재감의 무게만큼 이나 깊고 다양하다.

광학 현미경을 통해 표현된 내 작업의 물의 이미지는 이렇듯 다양하게 표현되는 듯하다. 슬라이드에 떨어지는 물방울의 낙차가 하나의 초기조건에 민감한 의존성을 가진 시간 전개에 따라 혼돈 속에 질서가 내재되어 있는 카오스(chaos:혼돈)가 발생했다. 중국 고전<장자>에는 카오스의 끝이 질서의 시작임을 암시하는 구절이 나온다.

이 카오스는 맑게 빛나는 유리알 같기도 하고, 행성들로 보여 지는 우주공간 같기도 하고, 물의 흔적을 찾아보는 듯한 화성의 표면 같기도 하다.

 

과학과의 연계성을 통한 이 흥미로운 사색은 어디에나 순응하며 부드럽게 흐르는 생명의 물 이미지로, 때로는 홍수를 이루어 강을 범람시키는 재앙으로써 생명을 위협하는 물의 이미지로, 시간을 가로질러 진화해 가는, 운동력 있는 물의 이미지로 표현하여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常像 플러스 (The Image of Mundane Scenes) / 2005

 

도시는 환타지적 공간이다. 무수히 많은 상업적 기호들과, 탈 물질이니 탈 공간화니 떠들어 대는 수많은 도상과 상징속에서 도시 이미지는 인간을 지배하는 환상들과 결합 시키려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러한 도시의 일상의 공간과 그 곳에서 영위되고 있는 어쩌면 환타지적 도시 이미지의 가려진 측면을 바라보는 특권을 갖고자 한다.

 

채집된 이미지들은 그 순간부터 다른 무엇을 의미하는 하나의 기호로서 작용되어지고 내 의식 심층에 숨어있는 무언가를 불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지고 있다. 그것은 파편화된 도시의 부산물로, 사람들의 모습으로, 패턴, 리듬, 반복을 강조하면서 나는 그의 이미지들과 더불어 유희하고자 한다.

 

도시의 리드미컬하게 배열되어 있는 상품의 세계, 소비의 세계, 바쁜 일상과 우스꽝스럽게도, 들척지근한 권태와 탐욕의 사이, 집요하게 자극하는 욕망과 그 속에 수수께끼처럼 숨겨있는 비밀스러움, 바쁨과 공허의 사이를 삼면연작으로 재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나름대로의 서술적인 재현방법이며 각각의 프레임들은 사물의 형태, 크기, 색채의 유사성과 의미의 유사성으로 세 개의 프레임을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세 개의 프레임 또는 여섯 개의 프레임의 근접성은 파편화된 이미지들의 상호 보완 또는 상징적 연상 작용을 통한 시각 확장에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

 

 

 

 

 

 

 

박제된 시간에서(In the Stopped Time) / 1996

 

작업의 중심요체는 자연사 박물관이며 어두운 곳에서 혹은 간간히 가느다랗게 비취어 있는 조명속에서 유령같은 존재로 남아있는 박제들을 나의 환상 속으로 해방 시키려 한다.

박물관은 무덤과 같다. 박물관과 무덤에는 음성적인 관계가 있다. 박물관(museum)과 무덤(mausoleum)에 대한 영어 발음상에 유사성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도르노(Theoder W. Adorno)역시 “박물관은 예술작품의 가족장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박물관이 전시하는 일련의 대상은 그것이 어떻게든 조화로운 표상체계를 형성한다는 가설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일련의 대상을 일련의 꼬리표로 바꾸어 놓은 것 또는 본래의 대상을 환유적으로 보충할 수도 없는 ‘상실된 젊음’, ‘활력의 부재’ 등 박물관에는 의미없고 가치없는 껍데기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엉겁의 시간속에 굳어버린 화석을 한 순간 바라보며, 유리창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박제를 보면서, 나역시 시간의 흐름속에서 영원히 빈껍데기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중력감을 느꼈다.

이 무더기속에서 남은 것 이라고는 쾌쾌한 냄새 뿐이다. 본인은 이 작업을 통해서 단지 존재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 본질의 문제를 각각 다른 표현 방법을 통해 새로운 제3의 본질을 탄생시키고자 한다.

영원히 죽음의 공간속에 갇혀있는 박제가 아닌 사진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를 찾을 수 있도록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존재로 표현하고자 한다.

작품 제작과정에서 볼 때 조각조각 나뉘어져 인화된 편린들을 다시 모아 붙이면서 조색작업을 진행시키는 가운데 표백제로 공간을 지우고 얼룩을 남긴 것 역시 이미지가 변형되고 왜곡됨으로써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생명의 흔적을 상징시키고자 했다.

 
 
 
 
 
 
REVIEW

서지영 사진전

강 혜 정(이미지 비평)

 

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가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소재 중의 하나이다. 특히 정물화에서 꽃은 순수하게 장식적인 기능을 하거나 종교적인 우의를 암시하는 상징적인 기능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많았다. 자연에 관해 인문학적이고 과학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던 르네상스 이후, 꽃은 그 자체의 특징과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의 대상이 된다. 일반적으로 꽃에 대한 접근 방식은 두 개의 시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꽃의 생김새, 색채, 질감과 같은 실제의 겉모양을 정확하게 묘사하고자 하는 과학적인 접근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꽃이 가진 고유한 내적 성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자연주의자적인 관점이다. 전자가 꽃에 대한 형식적이고 문양화된 식물학적인 접근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꽃의 생명력이나 관능미에 대한 감각적인 인식과정에서 비롯된다. 이 경우 꽃은 모든 자연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변화의 유기적인 조화를 의미하거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감성적인 생명의 아름다움과 허무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서지영의 꽃 시리즈는 율동적인 선과 색채, 살아있는 형태감을 통해 꽃의 정신적인 생동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꽃 정물사진 작업은 꽃의 알레고리적인 의미, 즉 상징 언어로서 꽃의 본질적 속성과 그 속에서 우주적 질서를 감지하게 해준다. 작가는 화병에 꽂혀있는 부케의 장식적인 기능처럼 도식화 되어버린 꽃이 아니라, 그것이 피어나고 활짝 만개해서 숙연히 고개를 떨구는 그 순간순간의 생명력을 형상화하고자 했다. 바늘구멍 카메라는 5일 내지는 20일 동안의 장시간 노출을 통해 부케의 일상을 기록하고, 사실의 극대화라는 기법을 통해 이미지화 된다. 그의 작업에서 모든 시작은 시간 속에 존재하며, 장시간 노출은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다. 따라서 사진으로 재현된 이미지는 과거가 현재가 되고 미래도 현재가 되는 긴 시간의 층위를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사진적 재현에 의해 환기되는 이미지의 연상 작용은 곧 우리들의 ‘자화상’인 셈이다. 모든 사물에는 각각의 운명이 주어져 있듯이, 그 운명에의 순응은 결국 자연의 순리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이 쓰고 갈 시간의 총량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사람은 나고, 자라고, 어느 순간 시간의 수레바퀴에 의해 주어진 운명의 길을 가야 한다. 이 시간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눈으로 지각할 수 없는 영역에 은폐되어 있는 어떤 본질 같은 존재이다. 서지영의 꽃 시리즈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존재의 현존을 아주 긴 시간의 응축을 통해 사진이미지로 가시화시켜 준다.

 

그의 근작인 <Dreaming flowers 2> 시리즈는 고전주의적이면서 현대적인 구성과 색채, 그리고 엄격한 절제미가 매우 돋보인다. 특히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곤충이나 나비, 새 등의 새로운 오브제들이 꽃 주위에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정물화에서 꽃이나 거울(유리병 표면에 나타난 볼록거울 이미지), 곤충이나 나비와 같은 작은 동물들은 바니타스(vanitas)나 메멘토 모리(mémento-mori)를 상징한다. 꽃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선사하지만 일찍 시들기 때문에 인생의 무상함이나 순간의 불연속성, 모든 것의 덧없음이나 허무를 의미한다. 곤충이나 나비는 애벌레 상태에서 부화하기 때문에 탐욕과 허무 혹은 죄에 얽힌 인간의 모습이나 부활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러한 오브제들은 예술가들에게 시간성,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자기 성찰의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어제와 내일이 항상 같은 상태로 지속될 수 없듯이 시간의 불가항력 앞에서는 허무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서지영 작가의 의도는 이와 같은 꽃의 아름다움과 생명력, 그리고 자연의 이치를 핀홀 카메라의 심미적 거리감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 <튜울립>(2010)이나 <레넌큘러스>(2010)는 마치 흩날리는 바람이 꽃잎을 수그러지게 하거나, 바삭바삭 소리를 내게 하거나 또는 시든 꽃에서 꽃잎이 떨어질 때 꽃 사이를 지나가는 세월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는 바늘구멍 카메라를 이용해 꽃이 피고 지고 떨어지며 흩날리는 작은 세부까지 꼼꼼하게 재현해냄으로써, 사물의 변화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상념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사진기가 대상을 냉정하고 분석적으로 묘사하며, 물질적 실재를 사실적으로 기록한다는 믿음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다. 그것은 사진이 사물의 은폐되어 있는 부분을 드러내어 사물의 본질적인 속성을 폭로하는 습성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바빌론>(2010)은 물이 반쯤 채워진 유리병에 한 다발의 꽃이 어지럽게 꽂혀 있다. 주변에는 박제된 나비와 꽃 모양의 문양들이 마치 조화를 스크린에 고정시켜 놓은 것처럼, 화면 앞으로 툭 튀어나온 듯 시각적 착각을 불러온다. 생화의 아름다움은 시간의 무게에 갇혀있고 반면에 가짜들은 빛의 세례를 받아 자신들의 그림자를 당당히 드러내 누가 진짜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겹겹이 쌓인 시간은 깊이 있고 다채로운 색채 효과를, 끊임없이 율동적인 선은 생명의 관능적인 미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뽀삐>(2011). 또한 바탕에 그려진 정적인 디자인이나 문양은 결국 꽃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대조적으로 암시하기 위한 장치이다<릴리>, <리시안>, <셀림 보라옐로이>(2010). 이 작품들은 진짜와 가짜, 전경과 배경, 실재와 허구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며 일종의 시적 환상을 불러온다. 유리병 속의 꽃은 관상적인 삶을 의미하지만 실재이고, 곤충이나 나비는 꽃의 꿀을 찾아 날아드는 ‘방황하는 영혼’ 내지는 ‘숨겨진 욕망’을 암시하지만, 여기서는 생명력을 상실한 한낱 박제된 오브제일 뿐이다. 이와 같이 작가는 꽃 작업을 통해 진짜와 가짜를, 존재와 부재를, 실재와 비실재를, 그리고 닮음의 아이러니를 부각시켜 꽃의 생명력과 존재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사진으로 재현된다는 것은 결국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새로운 환영을 창조하는 것이다.

 

현대 사진가들이 직면한 미적 문제는 현실의 대상을 얼마나 신중하게 변형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진의 사실주의적 속성을 고루한 아카데미즘과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현실성의 부정이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예술이라고 믿는 것 같다. 이러한 열망에 가장 적합한 매체가 디지털 시스템이라는 사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서지영은 근 10년 동안 아무런 기계적 장치가 없는, 그러나 아름다운 기계인 바늘구멍 사진기를 이용해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다. 그에게 이 원시적인 카메라의 기계적인 미는 “파괴적인 속도의 시대에 심미적인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다”

는 고백에서처럼, 시간의 원근과 심미적 거리감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미적 도구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미적 감수성은 바늘구멍 사진기라는 매체와 시간과의 역설적인 관계를 통해 현실을 번역하고 제시함으로써 드러난다. 그의 정물사진이 정물화와 다른 점은, 꽃의 존재와 생명력을 직설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상징적 알레고리를 강화시켜준다는 것이다. 작가는 꽃을 통해 작가 자신의 미학적 기질과 성향을 가장 감각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